화이트아웃 에필로그 (1) 어떤 남자

찰리 스펜서는 꿈을 이뤘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던 세상이었다.
봐,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 한 입에 사람을 먹어치우지도 않네. 얼어붙는 몸에 괴상한 무언가가 달라붙는 일도 없어. 내 몸을 갉아먹는 무언가를 입 안에서 빼내려 동료들이 날 줘패야 할 일도 없다니까.
병원의 창문 너머로는 부드러운 햇살에 이슬이 맺힌 수풀과 푸른 나무가 살랑거리고 있다. 찰리 스펜서는 지나가는 간호사들에게, 또 환자들에게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생각한다. 와! 정말 평화롭네. 제 집 아래에서 썩어가는 시체가 자신과 완벽하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빼면 정말 완벽한 금요일이었다.
그는 애정이 많은 남자였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다친 친구를 아껴서 의사를 꿈꿨다. 망해가고 있던 세계에 숨을 조금이라도 더 붙여주고 싶어 군인이 되었다. 그는 대하기 편한 종류의 사람이고 딱히 제 손해를 셈하지 않았기에 동료의 신임을 샀다. 쉽게 다정했기 때문에 조금은 가볍게 여자를 만났다. 그것은 의료팀의 스펜서 중사에겐 단점이었다. 부상자를 환자와 치료해야할 환부가 아닌 구해야할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그는 위기의 순간에 손을 떨었다.
때로 그 태도는 그를 영 군인답지 않게 만들어서-
“하하, 이왕이면 한 번 합을 맞춰본 동료들이 좋죠. 다들 그래도 건강하셨던 것 같아 다행입니다.”
소대의 대원들을 차가운 눈으로 보려 애쓰는 듯한 소대장에게도, 툭하면 신경질을 부리며 제 머리통을 내리치는 까칠한 상관에게도, 저래서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겠나 걱정스럽던 후임에게도, 단순히 잠시 합을 맞출 인력 이상으로 애착을 가졌다.
그럼 그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 줄 수도 있나? 아마도 동료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들을 그렇게까지 사랑해서일지도, 사실은 그 자신의 목숨을 그다지 가치를 높게 치지 않아서일지도.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생존욕구가 있다고들 하잖아, 가끔 나는 내가 그런 면만큼은 인간으로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종종 웃었다. 자포자기일까? 어쩌면 분에 넘치게 많은 것을 받고 살아와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생에 미련이 없었다. 그는 내일 죽어도 딱히 억울할 게 없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므로 찰리 스펜서에게 있어 이토록 추하게라도 살고 싶다고 바라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내일을 보고 싶어. 내 동료들 모두와 함께. …나도.
리엘, 사무엘, 모르마… 그들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그들이 자신의 미련이 된 걸까? 아무리 사랑하는 동료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 애정이 타인을 살해하면서까지 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게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노라면 무언가가 갉아먹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귀를 울렸다.
그 누구보다도 감염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임에도 그는 자신의 증세를 끊임없이 부정했다. 귀를 울리는 이명을 부상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상할 정도로 실수가 쌓여갔다, 그가 인지하지 못한 세계에서는 제 후임을 거의 죽일 뻔 했을 정도로. 그 때에도 그간 밤을 새워서 피곤한 거라고 고개를 저었다.
기생충이 제 몸에서 기어나왔는데도 그 기묘한 열망이 사라지지 않았을 때엔 조금은 절망했던 것 같다.
그는 사실 내심 자신의 몸 상태가 왜 그런지 예상이 갔다. 아담이라 불리던 정체모를 이를 쏘면서도 왜 그를 보자마자 보균자라고 확신했는지도.
자신을 아담이라 밝힌 것을 끌고 나가면 위험하다는 것도 이 지구를 위해서라면 그를 사살해야한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는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진정하고, 경위를 말해라.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푸는 그까지 끌어들여서는 안 됐는데.
분명 리엘 화이트헤드라면… 상대의 의견이 합당하다고 판단한다면 도와줄 것이라고, 그의 의료팀 소대원은 내심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그까지 옮아버린다면, 그럼 어떡할 건데. 찰리 스펜서는 어쨌거나 의료팀의 일원이었으므로 알고 있는 것이 꽤 있었다. 아담이 제 팀에서 수집한 바이러스의 감염자이고, 수첩에 적혀있던 숙주라는 것도, 어쩌면 자신이 죽여야만 깔끔하게 끝날지 모른다… 그런 것들을. 그럼 나는…? 그는 사살을 당하거나, 격리되거나… 어쩌면 에덴의 인류들이 그러했듯이 실험이라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람다를 끌어낼 수는 없으리라. 그는 혼자 남을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외로워질 거란 사실이 두려웠다.
리엘의 옷 한구석에 피가 튄 것을 보았을 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흔치 않게 눈의 안쪽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는 건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와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으로 조금은 덜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는 자신의 공범자가 되어줄 것이다. 냉동캡슐로 가득찬 방 안에서 그러했듯이.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찰리 스펜서는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든 이미 망가져버렸음을 인지한다. 하지만 이제와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세계를 무너뜨린다고 해도?
…그렇지 않길 바랬어.
003 무리에게서 왜 도망쳤더라… 어차피 우리는 죽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텐데. 이곳에서 떠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다고 여겼던가. 작전을 논의하면서도 그는 이제라도 모두를 죽이고 자결이라도 할지를 고민했다. 그렇게 세계를 되돌릴 수도 있겠지. 그리고 다른 셋만큼은, 리엘 대위의 감염도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말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숙주는 저였던 거 같네요. 와 저 자신이 제 과로의 원인이래요! 여러분, 제가 영원히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제와서? 그는 전선을 연결하는 순간까지도 입을 떼지 못했다. 살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모든 것을 사랑했고… 세계가 마지막을 짜내듯 웜홀을 열어주는 순간까지 끝내 찰리 스펜서는 망설였다. 넘어간 세계조차도 자신이 끌고들어온 것에 같은 모양으로 망가질까봐. 그 망설임에 발이 꼬인다. 뭐, 천벌이라도 받는 거려나. 그 순간에 아꼈던 후임이 손을 내밀었다.
“에, 사, 상사님…….!!!!!!!”
그 동앗줄을 붙잡으며 그는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야 할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자신을 속이자 두번째는 우스울만큼 쉬웠다. 나는 차마 이런 걸 저지르지 않을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해야 했어. 사무엘 데일은 어쩌면 사무엘 자신이 보는 것보다도 깨끗한 남자다. 찰리는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결벽적일 정도로 자기관리가 잘 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윤리의 선을 넘지 않을 인간이라는 점에서도. 사무엘의 후임, 이제는 동기가 된 그는 자신에 대한 괴롭힘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래서 다른 순간의 그를 관찰하고는 했다. 그는 자신이 이방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롭게 잘 살아가고 있었을 ‘자신’을 죽여버리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찰리 스펜서는…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자리를 만들어 놓을 거야, 모두가 있을 곳도. 돌아갈 수 없어. 이 세계의 미래가 정해져버렸다는 예감도 사라지질 않아. 미안해, 그렇지만 나는 잠시라도 행복한 삶을 누려야겠어. 문을 두드리고, 나와 똑같지만 조금은 덜 닳은 눈을 한 사람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고, 짧은 몸싸움 끝에 목을 비틀어서… ‘자신’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면서 그는 바랐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세계에 녹아들어서 이 세계의 이방인인 동료들과도 평화롭게 지내는 것따위를. …이것이 언젠가 문을 닫는 시간이 정해진 놀이공원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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